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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스 페미니즘: 혐오와 불평등이 만드는 자화상

시대作 2025. 5. 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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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스 페미니즘: 혐오와 불평등이 만드는 자화상

여성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강요된 전략이었다.

스텔스 페미니즘은 공론장의 백래시에 맞서 신념을 숨긴 채 행동하는 오늘의 여성상을 드러낸다.

조용한 연대는 사라지지 않았고, 이제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요구한다.

1. 어원의 뿌리, 평등의 씨앗

페미니즘(feminism)의 어원은 라틴어 femina(여성)에서 비롯됐지만, 그 철학적 뿌리는 훨씬 더 깊다. 본래의 페미니즘은 성별에 따른 차별을 해소하고 모든 인간이 동등한 시민으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자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여성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억압받는 모든 존재의 해방을 염원한 보편적 인권 담론이었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은 인간 존엄성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윤리적 기초이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사회의 정의 그 자체를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페미니즘의 본질은 평등이라는 전제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실천적 사유의 뿌리였다. 그러나 이 이상은 시간이 흐르며 오독되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왜곡 되어왔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종종 갈등을 조장하는 이념으로 몰리며 진의를 잃었다. 그렇게 혐오의 언어가 주류를 형성할 때, 페미니즘은 다시금 설명되어야 할 사상으로 퇴행하게 되었다.

도서 <에코페미니즘>

2. 침묵의 페미니즘, 그림자 속의 빛

최근 대두되는 스텔스 페미니즘은 한국의 젊은 여성들, 특히 2030 세대가 채택한 새로운 정치적 태도다. 공적 공간에서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순간 온라인 공격, 사회적 낙인, 직장 내 불이익이 따라붙는 현실 속에서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기로 한다. 그러나 이 침묵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현실을 읽고 살아남기 위한 지극히 전략적인 생존 방식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59.8%2030 여성 유권자가 페미니즘을 지지한다고 답했지만, 그중 절반 가까이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붙이는 것을 꺼려 한다.

 

이러한 선택은 단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분위기와 권력 구조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다. 이들이 선택한 은폐는, 무기력한 침묵이 아니라 저항의 형태가 비가시적으로 바뀐 하나의 진화다. 공개적인 정체성 표명이 오히려 위협으로 되돌아오는 환경 속에서, 스텔스 페미니즘은 내부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방어막이 된다. 그리고 그 방어막은 때로, 선거라는 제도적 통로를 통해 매우 분명한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2022년 전세계 성평등 지수
2022년 전세계 성평등 지수

3. 왜 페미니즘은 이기주의로 불리는가

이 물음은 한국 사회가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심층적인 진단을 요구한다. 페미니즘이 집단 이기주의로 오인되는 이유는, 여성들이 이제껏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불평등에 '아니오'라고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권력의 관성은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 하고, 이 균열은 저항보다는 거부의 방식으로 돌아온다. , 페미니즘이 위협하는 것은 단지 남성의 자리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익숙함이다.

 

기득권 구조는 자신의 이익을 침해받을 때, 그 요구를 이기적인 주장으로 프레임화한다. 이로써 성평등 담론은 언제나 너무 과한 것이나 지나친 요구로 비친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순간 감정적이 되거나 이념적이라는 낙인을 쓰게 되고, 정당한 권리 요구조차 사회 갈등의 원인으로 호도된다. 이 모든 전략은 페미니즘을 고립시키고, 자신을 자제하게 만드는 데 매우 효과적인 사회적 장치로 작동한다.

탄핵시위 주력은 2030 여성
탄핵시위 주력은 2030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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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혐오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혐오의 시대에 페미니즘은 더욱 조심스럽고 전략적인 언어를 요구받는다. 이는 침묵의 미학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몸짓이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혐오는 멈추지 않는다. 짧은 머리, 책 한 권, SNS'좋아요' 하나가 누군가를 공격의 표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그 혐오는 차이를 해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사회의 초상이다. 다름을 공존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통제해야 할 위협으로 치부하는 집단주의적 불안이 깔려 있다. 이 불안은 결국 혐오의 감정이 정치적 무기로 재편되는 토대를 제공한다. 따라서 혐오를 멈추기 위한 첫걸음은, 교육과 문화 속에 뿌리내린 편견의 언어를 해체하고, 일상의 회로에 성찰의 공간을 심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90일간의 여성연대- 2024 페미니즘 동아리 지원사업 전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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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셀' <소년의 시간> 청소년의 디지털 혐오, 온라인 상징 언어

5. 해외의 모습, 그리고 우리

해외 사례를 통해 보편성과 차별성을 동시에 읽어낼 수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여성이 동시 파업을 통해 성별 임금 격차의 문제를 사회 의제로 끌어올렸고, 프랑스에선 #MeToo 이후 각종 제도 개혁이 본격화되었다. 일본 역시 점차 젠더 감수성을 반영한 정책을 강화하고 있으며, 미국은 교차성 페미니즘을 통해 인종, 계층, 젠더를 함께 사유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스텔스 페미니즘은 고립 속의 연대이자 침묵 속의 선택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아직 공적 공간에서 여성이라는 목소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점에서 다르다. 공론장에서 여성은 쉽게 감정적이라 평가되고, 논리보다 인상으로 규정된다. 이는 제도적 진전과 별개로, 문화적 수용성과 언어적 관용이 여전히 부족함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단지 외국의 사례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경험을 어떻게 성찰하고 전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데 있다.

2022년 37회 세계여성의날 한국여성대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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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페미니즘의 현재성, 가야 할 길

페미니즘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형체를 바꾸었고, 언어를 조정했으며, 전술을 변주했을 뿐이다. 그 현재성은 조용한 투표소에서, 익명의 SNS 계정에서, 퇴근 후 집회장에서 되살아난다. 지금의 페미니즘은 이전보다 더 복합적이고, 더 전략적이며, 더 절박하다. 그리고 그 복합성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기본 질문에서 비롯된다. “왜 우리는 아직도 평등하지 않은가?” 이 질문이 유효한 한, 페미니즘은 유효하다. 침묵하는 여성 유권자들, 일상에서 싸우는 이들, 그리고 이름 없는 연대가 이어지는 한, 이 운동은 결코 과거형이 아니다.

 

스텔스 페미니즘은 회피가 아니라 전략이며, 절망이 아니라 생존이다. 침묵의 정치는 말보다 더 강력한 언어로 메시지를 남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침묵이 안심하고 목소리로 변할 수 있는 환경이다. 정치와 사회가 그 응답을 할 때, 여성들은 다시 광장으로 나올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모두를 위한 평등의 이야기이며, 혐오와 차별을 넘어서는 사회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제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새로운 언어를 찾고 있다. 스텔스 페미니즘은 바로 그 언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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