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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후보에게 미안하다는 개신교: 혐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

시대作 2025. 5. 1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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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후보에게 미안하다는 개신교: 혐오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

한국 개신교 일부, 이재명 후보에 대한 과도한 비난을 반성하며 자성의 목소리.
종교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외침은 혐오와 편향의 정치를 넘는 신앙의 윤리.
이번 서명은 정치와 종교가 교차한 현실 속에서 종교의 양심을 다시 쓰는 하나의 선언.

1. 개신교 내부의 자성: 혐오에서 회개로

이재명을 혐오하라는 구호는 정치적 비난을 넘어, 종교적 신념을 도구화한 혐오의 일상이었다. 그 혐오는 교회 안에서 설교의 형식을 띠고, 신앙의 이름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SNS에 실린 악마화의 문장들은 성서적 판단이 아닌 이념적 적대에서 비롯된 언어폭력이었다. 교회의 언어는 축복이어야 함에도, 현실에서는 낙인이 되어 돌아왔다. 혐오는 비판이 아니며, 악마화는 회개의 부름이 아니다.

 

신앙이 특정 인물에 대한 집단적 분노로 퇴색되었을 때, 이미 그 믿음은 신을 떠나 있었다. 그 누군가를 정죄하는 데 몰입한 교회는 진리의 본질을 잃었다.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지만, 그 사랑은 증오의 외침 속에 가려졌다. 교회 안의 침묵은 비겁함이었고, 일부의 과격함은 전체의 책임으로 확장되었다. 회개는 개인의 고백에서 시작되지만, 공동체의 죄에는 공동체의 응답이 있어야 한다. 이 서명문은 그 응답의 첫 문장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할 유일한 신앙적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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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치와 종교의 경계: 극우화에 대한 우려

정치적 극단주의와 결탁한 종교는 더 이상 신의 뜻을 묻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권력의 언어로 말을 바꾼 신앙이다. 교계 일부 인사들은 민주주의를 비웃으며 내란을 미화하고, 그에 동조하지 않는 교인들을 불경한 자로 몰아갔다. 복음은 누구의 편도 아니지만, 언제나 약자의 곁에 서 있었다. 그러나 지금 교회의 일부는 강자의 논리를 대변하며, 혐오의 기치를 들었다. 정치는 현실을 다루지만, 종교는 양심을 다뤄야 한다.

 

신의 이름으로 정치적 편향을 정당화하는 것은 곧 신을 정치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려 할 때, 종교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 진짜 위험은 무속도, 이단도 아닌, 신념 없는 신앙이다. 그 신앙은 자신이 누구의 대변인인지도 잊고, 오직 이익과 유행에 휩쓸린다. 일부 목회자의 정치적 행위는 종교적 책무와 분리되어야 한다. 개신교가 정치의 도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윤리적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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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앙의 본질 회복: 사랑과 공의로의 회귀

신앙은 누군가를 향한 칼이 아니라, 공동체를 품는 손이어야 한다. 공의는 정의에 대한 감각이 아니라, 사랑이 구체화한 실천이다. 이재명이 그리는 대동 세상은 신학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공공선의 구조이다. ‘하나님 나라는 현실의 정치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일상의 불의에 맞서 싸우는 신념의 자리다. 교회는 그에게 등 돌렸지만, 신은 약자의 편에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격파탄자라는 낙인은 교회가 아닌 언론의 손에서 시작되었지만, 침묵한 교회는 공범이었다. 믿음은 침묵 속에 퇴색하고, 침묵은 결국 비겁함으로 남았다. 정의로운 사람을 보호하는 일은 믿음의 실천이지, 정치적 편향이 아니다. 그가 어떤 정파에 속했든, 그가 추구한 가치는 신앙과 무관하지 않았다. 예수가 택한 길은 율법이 아닌 사람의 고통을 껴안는 길이었다. 교회가 지금 회개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누구의 고통 앞에서도 신의 이름을 말할 자격은 없다. 교인들이여, 이제는 비난이 아닌 회복의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이 시대의 교인들이여, 이재명에게 미안하다고 말합시다
이 시대의 교인들이여, 이재명에게 미안하다고 말합시다

4. 결론: 시대의 양심으로서의 종교

종교는 시대의 불의에 대해 말해야 할 양심이다. 침묵은 방조이며, 비호는 공범이다. 혐오에 굴복한 신앙은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은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도덕적 책임이다. 종교가 할 일은 누구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외치는 것이다. 개신교가 보수화되었다는 평가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위기다. 자성의 언어는 신앙을 회복시키는 시작이다.

 

회개는 단지 눈물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을 되돌리는 결단이다. 시대는 종교의 침묵에 냉소하고 있고, 청년들은 교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외면한다. 다시 말하지만, 종교는 정치가 아니다. 양심 없는 교회는 예배당을 가졌어도 신의 자리를 잃는다. 이제 교회는 권력이 아니라, 고통의 자리에 다시 서야 한다. 시대의 양심으로서 교회가 살아남고자 한다면, 진실 앞에 무릎 꿇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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