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여성의 서사: <82년생 김지영> <우주> <자기만의 방>

시대作 2025. 3. 1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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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담는 별들의 말 <82년생 김지영> <우주> <자기만의 방>

 

소설 '82년생 김지영', 김환기의 회화 '우주',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을 통해
여성의 서사와 자아 정체성을 바라본다.

 

 

영화 &lt;82년생 김지영&gt;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김지영, 삶의 무게를 짊어진 여성들

세상은 밝고도 어두웠다. 김지영이 살았던 공간, 그녀의 시간들은 그랬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에도, 아이를 돌보는 중에도, 혹은 지하철 창밖으로 흔들리는 빛을 바라볼 때도, 그녀는 알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살았다. 스스로가 정당한 자리에 있는지, 이 길이 옳은 길인지, 누구도 묻지 않는 질문을 홀로 되뇌며.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서 김지영은 특별한 어떤 개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동시대 여성들이 겪어온 현실의 집합체였고, 오랜 시간 이어진 흐름 속에 존재하는 목소리였다. 그렇기에 한 개인의 기록이자, 우리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질문들을 붙잡는 응시였다.


김환기의 <우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

한 점 한 점, 푸른 별처럼 빛나며 물감이 끝없이 이어진다. 캔버스 가득한 점들은 멀리서 보면 밤하늘의 별 같고 가까이에서 보면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의 흐름 같다. 한 점은 혼자일 때는 작은 흔적이지만, 무수한 점들이 모이면 하나의 광대한 세계가 된다.

 

김환기의 &lt;우주&gt;: Universe 5-IV-71 #200, 1971, 코튼에 유채, 254x254cm. 사진=김환기미술관

 



김지영의 삶도 그러했다. 그녀의 삶을 이루는 작은 일상들이 점이 되었고, 그것들은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연결되었다. 수없이 반복되는 '괜찮아'라는 말, 타인에 의해 설명되는 자신의 감정들, 그리고 사회적 틀 속에서 조용히 사라져 가는 자아.

김환기는 뉴욕에서 『우주』를 그리며, 인간 존재의 무한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사유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김지영의 이야기와 닮아 버렸다. 개별적 존재들이 모여 거대한 흐름을 이루듯, 한 여성의 서사는 묻혀버리는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가 품어야 할 하나의 별자리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을 요구하다

"여성이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과 500만 파운드가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 문장은 즉흥적인 선언이 아니라, 오랜 시간 여성들에게 주어진 공간과 기회의 부재를 환기하는 외침이었다.


김지영에게도 '자기만의 방'은 존재했을까? 가정 내에서, 사회에서, 그녀는 진정한 의미의 '자기 자리'를 가지고 있었을까?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지영은 가정을 꾸렸고, 사랑하는 남편이 있으며, 가족을 위해 헌신할 기회가 있었다. 그녀의 선택 아니었나?"

그러나 진정한 선택은, 다양한 가능성 위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선택지가 없거나, 선택이 강요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된 것이었다면, 그것을 우리는 온전한 '선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울프는 말한다. "역사 속에서 여성들은 미지의 존재로 남아 있었다." 『82년생 김지영』의 서사는 바로 그 미지의 존재들을 현실 속으로 끌어온다. 그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The dust jacket of the 1929 Hogarth Press edition of Virginia Woolf's &lt;A Room of One's Own&gt;

 

MZ 세대가 본 김지영 – 우리는 다르지만 같다

MZ 세대에게 김지영의 이야기는 어떻게 읽힐까?

 

어떤 이들은 그녀의 이야기가 과거의 것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가부장적 문화가 옅어졌으며, 차별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중요시되는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김지영'이 겪었던 문제를 현재진행형으로 경험하고 있다.

 

  • 직장에서 '결혼 계획'을 묻는 면접 질문
  • 육아휴직 후 돌아왔을 때 바뀐 자리
  • "여자는 감정적이야"와 같은 익숙한 문장들

이 모든 순간이 작은 점들이 되어, 김환기의 『우주』처럼, 하나의 구조를 이루어 낸다. 우리가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 공감을 넘어선다. 바로 변화를 향한 미묘한 움직임이자, 누군가의 목소리를 가로막았던 오랜 장벽을 허무는 과정이다.

울프가 말했던 '자기만의 방'은 물리적 공간에 한정되지 않으며, 자아를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자유의 장이다. 김지영에게,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방은 주어졌는가?
이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김지영 이후,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김지영을 통해, 김환기의 점들을 따라, 버지니아 울프의 방을 지나, 우리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별들은 지금도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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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현재를 보여주는, 청춘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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