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권리인가, 국가의 부담인가
- 65세는 더 이상 늙은 나이가 아니다 – 사회구조 변화에 대한 인식 필요
- 복지는 시혜가 아닌 권리 – 기초연금 개편 논의의 방향성 재검토
- 재정 지속성과 복지권의 균형 –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핵심
“65세는 더 이상 늙은 나이가 아니다.” 이 말은 신체적 수명이 아닌, 사회의 구조가 변하고 있다는 함의다. 의학과 영양, 노동 환경이 변화하면서 65세는 여전히 경제활동이 가능한 나이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제도는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노인 복지 제도를 둘러싼 최근의 논의는 고령화 속도와 재정의 지속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 노후의 ‘삶의 질’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고령사회의 복지는 경제 지표의 문제만으로 제약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것은 한 사회가 노후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여주는 윤리적 척도이자 공동체의 품격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초연금 축소안은 이 품격의 방향을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복지란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며, 이 권리를 제한할 때 사회가 감당해야 할 후폭풍은 단순한 예산 절감 이상의 충격을 불러올 수 있다. 결국 고령화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비용이 아니라 기준이다. 어떤 삶을 존중하고 어떤 상황을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제도만 바꾼다면 우리는 더욱 불안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복지란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며, 이 권리를 제한할 때
사회가 감당해야 할 후폭풍은 예산 절감 이상의 충격을 불러올 수 있다.
고령화의 그늘 속에서, 기초연금은 무엇을 놓쳤는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유엔 기준으로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로 진입하고, 2050년에는 전체 인구의 40%가 노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고령화는 단순한 인구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 시장, 소비 구조, 복지 재정, 심지어 세대 간 감정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파문을 불러온다.
그러나 복지 제도는 여전히 '정지된 시간' 속에 갇혀 있다. 기초연금 역시 그러하다. 현재 소득 하위 70%의 65세 이상 노인에게 월 최대 34만 2,510원이 지급되고 있으나, 실제 은퇴 가구의 절반 이상은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쳐도 최소한의 생활비조차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 통계로도 드러났다. 이 상황에서 기초연금은 생계보장의 수단이 아니라, 빈곤의 속도를 늦추는 임시방편에 불과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제도의 구조가 점차 재정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는 인식과 함께, 정치적 논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선 단순한 '금액 조정'이 아니라, 기초연금이 지향하는 바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65세, 여전히 적절한 기준인가
또한 최근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노인 연령 상향’ 문제는 숫자의 문제로 제한되지 않는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건강 수준, 노동 가능성, 교육 수준이 과거보다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연령을 기준으로 삶의 질을 단정짓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특히 지역 간, 계층 간 건강과 소득 격차가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평균 수명이 늘었다고 하여 모두에게 똑같은 정책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65세라는 숫자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기준은 여전히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더욱이 고령자 고용 환경이나 복지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금 수급 시점을 늦추는 것은 사실상 생존의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
고령화는 늙어감이 아니라 살아감의 방식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정책도 단순한 수치 조정보다는 삶의 다양성과 불균형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연령 기준의 재설정은 단순히 수급 연령을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복지 철학과 사회 정의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일과 맞물려 있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복지의 기본권 사이
2025년부터 2070년까지 기초연금 누적 지출은 1,9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복지 재정의 한계를 보여주는 수치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이고, 생산가능인구는 급감하고 있으며, 복지 지출은 늘어나는 상황이다. 과연 지금의 제도를 미래 세대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복지는 단순한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삶의 권리이며, 특히 생애 말기에 이른 국민에게는 더욱 절박한 문제다. 복지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비용 절감이 아니라 시스템의 정비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초연금이 ‘선심성 복지’라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약자에게 실질적인 안전망을 제공하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복지와 재정의 균형은 상호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복지는 바로 이 두 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가능하다. 따라서 정치권은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기 이전에, 사회 구성원 모두의 참여를 끌어내는 공감의 설계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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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은 ‘선별’이 아닌 ‘정교한 조정’으로
최근 제시된 ‘최저소득 보장형 기초연금’은 논리적으로 타당한 접근일 수 있다. 수급 대상을 중위소득 50% 이하로 좁히고, 이들에게 더 높은 연금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접근이 전면 도입된다면 중산층 이하 상당수가 복지에서 탈락하게 되고, 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과 복지 불신이 증폭될 수 있다.
선택과 집중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그 선택이 정당하고 투명해야 한다. 단순히 숫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준과 가치에 따라 조정되는지가 중요하다. 기초연금 제도 개편은 급진적인 선별보다 점진적인 조정이 되어야 한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간의 통합적 접근, 다층적 노후소득보장 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이 성숙기 구조로 전환되고, 최소 보장액이 상향된다면 기초연금은 ‘빈곤 방지’라는 원래 목적에 더 충실할 수 있다. 연금 개편은 고령자의 사회 참여를 차단하는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되며, 고령친화적 일자리 정책과 연계될 때 비로소 효력을 발휘한다. 복지는 분리된 정책이 아니라 삶의 조건 전반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론: 존엄한 노후, 지혜로운 설계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노인의 숫자를 줄이는 일이 아니라, 고령사회의 불안을 줄이는 일이다. 사회가 고령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태도는 설계할 수 있다. 복지를 구조조정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사람을 위한 구조 자체로서 재구성하는 전환적 사고가 절실하다.
정치적 의사결정은 언제나 우선순위를 재배열하는 일이지만, 복지의 영역에서는 그것이 곧 인간의 존엄 순서를 매기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기초연금을 논의하는 우리의 태도는 고령자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가 경험하게 될 노후의 풍경을 결정짓는다. 65세, 이제는 낡은 숫자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숫자 속에 담긴 수많은 삶의 궤적을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면, 제도는 숫자보다 더 낡아질 것이다.
노후는 누구에게나 도래하며, 그 준비는 개인의 몫이기도 하지만, 공동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이다. 경쟁과 효율만을 앞세운 사회가 아니라, 늦은 삶에도 존엄을 품을 수 있는 사회. 그리고 그 존엄이 제도와 정책의 언어로 구현될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고령화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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