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개츠비·브뤼헐:
예술이 말하는 계급과 기억되지 않는 존재들
영화 〈기생충〉, 소설 『위대한 개츠비』, 브뤼헐의 회화를 통해 계급과 존재의 불평등을 되짚는다.
세 작품은 ‘주인공이 되지 못한 이들’의 삶을 무대 바깥에서 기록한다.
우리는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 그 조명은 우리에게 닿고 있는가?
1. 브뤼헐의 그림 속 '없는 주인공들'
물 한 잔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생각한다.
피터 브뤼헐이 그린 <농민의 결혼식>은 분주하다. 아이는 수프를 나르고, 사람들은 빵을 베어 문다. 신부는 구석에 앉아 무표정하다. 춤도 없고, 음악도 들리지 않지만, 그림은 ‘축제’라 불린다. 그런데도 어딘가 쓸쓸하다.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다. 삶은 의례이고, 의례는 노동의 연장이다. 눈에 띄지 않지만 지워지지 않는 존재들, 그림자는 언제나 중앙보다 가장자리에 머문다.
2. 《기생충》의 지하에서 벌어진 파티
이 장면은 수 세기를 건너뛴다.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으로. 기택 가족의 하루는 축제와 무관하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파티는 있다. 사모님이 외친다.
“생일 파티예요!”
상류층은 자연스레 축제를 향유하고, 하층민은 계획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그 무대의 배경이 된다. 뒤엎어진 텐트, 비에 젖은 옷가지, 곰팡내… 그 모든 것은 파티의 그림자가 되어, 계층의 명징한 선을 긋는다.
파티는 누구를 위한 무대인가? 그리고 누구는 언제나 조명이 닿지 않는 쪽에 있는가?
3. 개츠비의 황금빛 허상
하지만 이 현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 역시 같은 고백을 품고 있다. 개츠비는 매주 파티를 연다. 샴페인이 넘치고, 음악이 흐른다. 모두가 환호하지만, 정작 누구도 그를 모르고, 누구도 그와 함께하지 않는다.
그의 사랑, 그의 꿈, 그의 이상은 물 위에 그린 수채화처럼 허물어진다. 결국 개츠비의 죽음은 한 줄의 신문 기사로만 남는다. 그의 인생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삭제된 삶이다.
4. 세 개의 작품, 하나의 서사
이쯤 되면 우리는 눈치챈다.
브뤼헐의 그림, 봉준호의 기생충, 피츠제럴드의 개츠비는 모두 ‘계급’이라는 투명하면서 완고한 벽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벽은 돈이 많거나 적다는 것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무대에 오를 수 있느냐'와 '무대 뒤에 머무르느냐'를 가르는 무대 조명의 각도에서 드러난다.
브뤼헐은 웃지 않는 민중을 그렸다. 봉준호는 냄새로 가려진 인간의 존엄을 보여주었다. 피츠제럴드는 환상 속 아메리칸드림의 붕괴를 낭만의 문장으로 써 내려갔다. 이 셋은 시대도, 형식도, 언어도 다르지만, 같은 장면을 포착했다. ‘살아 있지만, 삶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풍경.
5. 당신은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장면의 관객이면서도 배우일지 모른다. 계층은 수직으로 쌓이지만, 그 안의 감정은 수평으로 흐른다. 비좁은 방에 함께 앉아 있던 기택 가족, 그림 속 그릇을 나르던 소년, 개츠비의 정원을 스쳐 간 무명의 손님들처럼.
우리도 어떤 서사의 뒷모습 속에 자리한다. 그러니 다시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무대 위인가, 관객석인가, 아니면 조명이 닿지 않는 뒤편인가?"
6. 기억되지 않는 삶들
브뤼헐, 기생충, 개츠비는 각각 다른 예술 형식이면서 하나의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가난은 왜 축제가 되지 못하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삶은 왜 기억되지 않는가?
현실은 경제적 양극화의 문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무대 뒤편에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있다. 그들은 이름 없이 존재하고, 빛없이 살아가며, 기록 없이 사라진다.
브뤼헐의 그림도, 봉준호의 기생충도, 피츠제럴드의 개츠비에 담긴 문장도 모두 이들을 위한 증언이다.
“계급은 구조이며, 지워지는 삶들의 총합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안을 걷고 있다.
📎 영화와 그림, 소설로 엮은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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