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서부지법 폭동 사건과 카프카의 『소송』

시대作 2025. 3. 2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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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이라는 미궁: 서부지법 난입 사건과 카프카의 『소송』

 

 

 

열려 있던 문, 닫혀버린 정의

20251월의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의 후문은 열려 있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열어둔 듯한 그 틈으로, 무언가에 이끌린 사람들이 속속 진입했다. 그날,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소식이 퍼졌고, 감정은 이성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법정은 평온을 잃고, 재판정은 질서의 무대가 아닌 분노의 극장이 되었다. 법이 통제하지 못한 것은 사람들의 분노가 아니라 그 분노의 흐름이었다.

 

두 달이 지났다. 그때의 군중 가운데 한 남자가 법정에 다시 섰다. 이번엔 관람객이 아니라 피고인으로서. 30대의 정모 씨는 보석을 청구하며 말했다. "법의 엄정함을 온몸으로 느꼈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유치장과 구치소의 벽은 차갑고 조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법이란 그 차가움을 통해서만 느껴지는 존재여야 하는가. 차가움이 곧 정의라는 착각이 한국 사회에 스며들어 있다면, 그건 또 다른 통제의 방식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에서 요제프 K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체포되고, 정당한 절차 없는 재판을 받는다. 그는 끊임없이 법정에 소환되지만, 법은 그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누가 기소했고, 왜 벌을 받아야 하는지. 소송의 세계에선 법이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복잡하고 불투명하며, 인간의 언어로는 파악되지 않는 구조물이다. 그 그림자는 때로 인간의 윤리보다 위에 존재하는 냉혹한 원칙처럼 군림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소송>

 

 

 

한 남자의 자백, 한 사회의 침묵

 

정 씨는 자백했고, 증거에도 동의했다. 대부분 피고인은 부인했으나 그는 순응했다. 하지만 그 순응조차 질문하게 된다. 이 사건은 단순한 '형사법의 적용'이 아니다. 집단의 감정, 정치적 열광, 법의 위엄이 얽힌 복합적 국면이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떨림을 느끼고, 누군가는 정의를 말하며, 누군가는 두려움을 비웃는다. 진실은 그사이 어디에 있었고, 법은 그 혼돈 위에 질서라는 이름을 씌운다.

 

당시의 군중은 법정을 성소가 아닌 투쟁의 무대로 오인했다. 그러나 법은 단단한 벽과 감시 카메라, 그리고 판사의 목소리로 그 권위를 증명해 왔다. 그들은 그 벽을 넘었고, 창문을 깨뜨렸으며, 경찰의 방패를 흔들었다. 이 장면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폭력 이상으로, '법에 대한 신념의 파탄'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상징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균열 지점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풍경이기도 하다.

 

 

『소송』과 오늘의 재판: 이어지는 비극의 구조

소송에서 요제프 K는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법의 문턱에 순응한다. 그는 질문을 멈추고, 판결을 기다린다. 한국의 피고인들도 마찬가지다. 법원이 열어주는 최소한의 발언 기회에 기대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으려 애쓴다. 그 말들 속엔 억울함보다 두려움, 분노보다 체념이 먼저 서린다. 피고인의 얼굴에는 사회가 만들어낸 권위에 굴복한 자들의 복잡한 감정이 스며 있다.

 

그러나 이 재판은 또한 묻는다. “누가 죄인인가?” 단체의 위력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통해 성립되는가. 누가 자발적이었고, 누가 밀려들어 갔는가? 검찰은 '다중의 위력'이라는 법적 개념을 들이밀지만, 현실의 군중은 의도와 충동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그 모호함이 죄의 경계마저 흐리게 한다. 법의 해석이 감정과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기준을 따를 것인가.

 

오늘날 한국의 법정은 카프카의 시절만큼 불투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때로 '이해되지 않는 권위' 앞에 선다. 법의 이름으로, 질서의 이름으로, 사법의 이름으로 선고되는 모든 문장은 삶을 바꾸고 인생을 무너뜨린다. 이 글을 읽는 우리는 그저 방관자일까, 아니면 언젠가 피고인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예비 시민일까. 우리는 언제든지 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 만인에게 평등을 상징하는 법원 모습. 하: 서부지법 난동 사건. 캐리커처

 

 

우리는 언제나 피고인이 될 수 있다

정 씨는 마지막 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의 엄정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 말은 법이 정의롭다는 증언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언어이며, 때로 체념의 언어이기도 하다. 소송의 마지막 장면에서 요제프 K는 스스로 걸어간다. 그는 반항하지 않는다. 카프카는 그 침묵 속에, 법의 비극을 심어두었다. 그 비극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비극의 언저리에 있다. 법은 질서를 수호하지만, 감정을 누르려 들 때 권력이 된다. 서부지법의 난입은 불법의 영역으로만 내몰 수 없고, 한 시대의 균열이 뿜어낸 징후였다. 그리고 재판정의 말 한마디, 피고인의 고개 숙임, 기자의 키보드 소리 하나하나가 그 시대의 풍경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한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권위와 시민 사이에 새겨진 질서의 대화다.

 

우리는 모두 그 재판의 방청객이다. 법의 문턱 너머에서, 혹은 안쪽에서, 언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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