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리틀 포레스트>와 <인왕제색도>, 그리고 <바깥의 여름>

시대作 2025. 3. 27.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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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와 정선의 풍경화, 그리고 <바깥의 여름>

자연, 삶, 상실 - 세 시대가 마주 앉은 식탁

 

영화 <리틀 프레스트> 스틸컷.

 

 

돌아감으로써 완성되는 이야기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는 도시의 삶에 지친 혜원이 고향으로 돌아와 사계절을 보내며 자급자족하는 이야기다. 대단한 사건은 없다. 하지만 봄동 무침을 무치고, 눈밭에 밭을 갈며, 김장하는 매 장면이 고요한 위로가 된다.

 

돌아간다는 건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을 다시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 영화는 돌아감의 미학을 전한다. 도망이 아닌 회복의 시간. 도시라는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라 여겨졌던 고향이 오히려 본질에 가까운 자리를 차지한다. 혜원의 서사는 개인적인 동시에 세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청년 세대의 탈도시, 귀촌, 자급자족 라이프스타일이 새롭게 조명되는 이 시대, 리틀 포레스트는 그 흐름의 정서적 원형을 그려낸 작품이다.

 

 

정선의 풍경, 마음의 지형도를 그리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의 대표작 인왕제색도는 먹빛으로만 그렸지만, 색보다 더 다채로운 감정의 결을 품고 있다. 인왕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먹구름과 비의 기운은 자연이 잠시 멈춘 듯하면서도 속으로 깊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 풍경은 바깥의 모습을 담는 동시에, 안쪽의 풍경을 비춘다.

 

이 풍경화는 고요하게 머무를 뿐인 산수화의 재현이 아니다. 정선은 눈앞의 자연을 관찰하면서도, 내면의 정서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그렸다. 마치 한 폭의 시처럼, 먹선은 사람의 감정을 닮아 흐른다. 리틀 포레스트가 한 사람의 사계절을 따라간다면, 인왕제색도는 한순간의 정적 속에 세상의 순환을 담고 있다.

 

정선 <인왕제색도>(1751, 종이에 먹, 79.2×138.0cm). 사진=국립제주박물관

 

 

<바깥은 여름>, 삶의 틈으로 스며드는 슬픔

김애란의 단편 바깥은 여름은 삶이 갑자기 비틀리는 어떤 틈을 말없이 들여다보는 시선으로 가득 차 있다.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서 벌어지는, 그러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실의 풍경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 삶의 균열을 껴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김애란은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버티는가.”

 

여름이라는 계절은 따뜻하지만, 누군가에겐 그 빛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일 수 있다.

 

소설 속 여름은 찬란하고도 견디기 어려운 감정의 계절이다. 소중한 것을 잃은 이들이 사는 바깥은 고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언뜻 말해지지 않는 상실이 고여 있다. 책 속에 실린 여러 단편 중 이정우의 이야기 역시 그런 상실의 연속이다. 아버지와의 거리, 곽 교수와의 얽힘, 점점 작아지는 기대와 반복되는 실망. 그 가운데에서도 그는 일상을 이어가고, 삶의 전형성을 혐오하면서도 닮아간다. 이 모든 균열은 여름이라는 이름의 바깥에 조용히 축적된다.

 

이 소설은 소란하지 않다. 오히려 슬픔이 스며드는 일상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이는 리틀 포레스트의 고요한 음식 장면들과도, 인왕제색도의 차분한 먹선과도 닮았다. 거대한 감정보다, 조용한 눈빛 하나, 식탁 위의 잔반 하나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김애란의 소설 <바깥은 여름> 표지

 

 

 

세 조각의 퍼즐, 하나의 정서를 말하다

세 작품은 서로 다른 예술 형식과 시대적 맥락에서 태어났지만, 공통으로 일상의 감정 풍경화를 그린다. 리틀 포레스트의 귀향’, 인왕제색도의 정중동’, 바깥은 여름의 상실은 모두 삶의 여백을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

 

서로 다른 매체이지만, 세 작품은 모두 '조용한 마음의 언어'로 서로를 호출한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긴 서사로 묶인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치유의 매개이며, 침묵은 고립이 아니라, 말 없는 공감이다. 우리는 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우리는 왜 이들의 이야기에 끌리는가

이 세 가지 콘텐츠가 동시대 독자와 관객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명확하다. 너무 빠른 세계 속에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받는 사람들에게 천천히, 조용히, 충분히살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속도를 되찾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시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정선의 그림처럼, 김애란의 문장처럼, 리틀 포레스트의 밥상처럼-이들은 아무 말 없이 곁에 머무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더 오래 남는다.

 

 

콘텐츠를 통해 다시 읽는 지금, 우리의 좌표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영화, 회화, 문학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가 한국인의 감정과 서정성을 어떻게 공통으로 드러내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리틀 포레스트의 장면이, 인왕제색도의 구름이, 바깥은 여름의 문장이 어느새 하나의 풍경이 되어 우리 앞에 다가오는지를 발견한다.

 

각각의 장면은 다른 날에 태어났지만, 오늘이라는 시간에서 함께 숨 쉰다.

 

리틀 포레스트가 일본 원작을 바탕으로 리메이크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판은 계절과 식탁, 고요한 감정선 위에 한국인의 정서를 덧입혔다. 그 속엔 이 땅의 흙냄새, 엄마의 손맛, 느리게 지나가는 삶의 결이 스며 있다. 자연에 머물며 자급자족하는 행위가 단순한 낭만을 넘어 '존재의 회복'으로 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각자에게 다르지만. 그 시간을 감싸주는 감정의 결은, 오래전부터 우리 곁을 지켜온 삶의 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조용한 이야기들이 건네는 위로는 참으로 녹록하다. 쉽게 흘러가지만 쉽게 잊히지 않고, 그 안에서 우리는 삶의 결을 다시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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