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 인문 교양 필독서

시대作 2025. 5. 23.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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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 인문 교양 필독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익숙한 역사를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질문의 여정을 그린다.

유시민은 각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닌, 그 이면의 인간과 감정, 구조를 탐색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 지식이 아닌,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해석을 마주한다.

1. 거꾸로 읽는다는 것의 의미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제목부터 시선을 붙잡는다. 이 책이 지향하는 독서의 방향은, 익숙한 해석을 기울이고 낯선 관점을 세운다는 데에 있다. 유시민은 사건을 시대순으로 배열하지 않고, 각각의 역사적 국면을 질문의 형태로 다시 배치한다. 그래서 도출되는 질문은, 무엇이 일어났는지가 아니라,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에 맞닿아 있다.

 

그는 과거를 회고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재의 언어로 과거를 다시 사유하고 해석하는 여정을 제시한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시작된 깊이는 언론과 권력의 대립을 통해 진실과 정의라는 개념을 해부하고, 그 구조 안에서 지식인이란 존재의 윤리를 묻는다. 특정 시기의 일화가 아닌, 오늘날의 지식 사회가 떠안은 책무로 이어진다.

 

유시민은 사건의 표면보다 그 배경의 흐름을 따라간다. 사라예보의 총성과 베트남 정글의 함성은 지나간 시대의 일부가 아니라, 인류의 반복된 욕망과 실패를 상징하는 징후로 등장한다. 사건은 단절된 기록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동일한 조건 아래 선택하고 오판했던 과정의 누적임을 증언한다.

 

거꾸로 읽는다라는 것은 결국, 역사라는 텍스트를 낯설게 보는 일이며,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독해의 시작이다. 그는 교과서적 해설보다, 파열된 목소리와 균열 사이에서 의미를 길어 올린다. 그런 점에서 책은 일방적인 설명이 아니라, 사유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장치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될 뿐 아니라, 그 사실을 대하는 태도를 고민하게 된다. 역사는 외워야 할 목록이 아니라, 되물어야 할 질문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거꾸로 읽는 세계사> 2021년도판

 

2. 33년 만의 개정, 문장을 다시 세우다

1988년의 한국은 민주화의 물결이 한창이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초판이 나온 해는, 공공의 언어로 진실을 말하는 것이 개인의 윤리와 맞닿아 있던 시기였다. 당대의 책은 그래서 젊은 저자의 분노와 이상이 날 것 그대로 담겨 있었고, 그것은 독자에게 일종의 지적 해방감을 주었다.

 

하지만 33년은 이제 숫자가 아니라 사유의 격자가 되었다. 유시민은 그 시간을 견뎌낸 문장들을 고치지 않고, 통째로 버렸다. 그리고 자신이 새롭게 축적한 인식과 정제된 언어로, 책을 처음부터 다시 썼다. 이는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책 속에 담아내겠다는 작가의 태도다.

 

개정판은 초판의 열기 대신 깊게 숨을 들이쉰다. 그 호흡은 서두르지 않고, 사건의 중심보다는 주변을 따라 움직인다. 전면 개정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이유다. 유시민은 동일한 사건에 다른 해석을 부여하고, 그 해석은 단순한 정보의 갱신이 아니라, 인식의 지층을 드러낸다.

 

그는 더 이상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지나칠 법한 허름한 곳에서 의미를 끌어낸다. 이 변화는 경험의 산물이며 동시에 책임의 표현이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견해를 가진다는 의미이며, 그 입장은 세월에 따라 진화할 수밖에 없다. 개정판은 그렇게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정직하게 마주하려는 시도의 결정체다.

Russian Revolution
Russian Revolution

3. 사건에서 서사로, 서사에서 인간으로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택한 방식은 각 장마다 한 명의 인물 혹은 한 지역의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감정의 진폭이 있다. 히틀러, 호찌민, 맬컴 엑스 같은 인물들은 역사적 주체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들은 시대의 억압, 저항, 광기, 신념을 응축해 살아 숨 쉬는 서사로 확장된다.

 

특히 9장에서 유시민이 맬컴 엑스를 주요 인물로 다룬 것은, 미국 민권운동의 단선적인 이해를 흔드는 선택이다. 마틴 루서 킹의 비폭력 노선과는 다른 궤적을 걸었던 맬컴 엑스는, 이 책 안에서 억눌린 언어의 대변자로 자리한다. 이러한 관점은 인물의 삶을 통해 역사의 구조를 감각적으로 드러내며, 그 구조 속에서 감춰진 인간의 표정을 탐색한다.

 

베트남전쟁 역시 외교적 충돌이 아니라, 식민지와 제국, 무력과 언어, 침묵과 항변 사이의 내밀한 감정 지형으로 그려진다. 유시민은 국가의 이름보다, 그 이름 아래 짓밟힌 개인의 고통을 기록하는 데 더 많은 문장을 할애한다. 그렇게 사건은 서사가 되고, 서사는 곧 인간의 이야기가 된다.

 

독자는 연대기적 흐름 속에서 하나의 지점에 멈춰 선다. 그리고 그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를 묻기 시작한다. 이 책은 우리를 '역사의 외부자'로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으로 끌어들여 역사적 감정의 주체로 만든다. 그래서 독서는 수동적 행위가 아닌, 정서적 참여자가 된다. 사건의 원인보다 사건의 감각을 기억하게 하는 방식, 이것이 책의 진정한 힘이다.

The Story of the Great Depression in Photos
The Story of the Great Depression in Photos

4. 해석의 힘, 해석의 윤리

역사 서술에서 '해석'은 종종 중립성의 부재로 지적되곤 한다. 그러나 유시민은 결코 해석을 감추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해석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윤리적 책임을 자각한다. 히틀러를 다룬 장에서 그는 악을 단죄하는 대신, 그것이 일상에서 어떻게 구조화되는지를 짚어낸다.

 

'악의 평범함'이라는 표현은 바로 그러한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이는 독자가 타인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통로가 된다. 해석은 설명을 넘어서, 감정의 층위에 도달한다. 유시민의 문장들은 이론보다 직관에 가깝지만, 그 직관은 오랜 성찰의 결과다. 그는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고, 명확한 결론보다는 사유의 다양성을 열어둔다.

 

독자는 책을 읽는 동안 정해진 해석이나 결론이 아니라, 선택할 여지를 부여받는다. 이러한 방식은 독자를 지식의 수용자가 아니라 판단의 주체로 끌어올린다. 해석에는 권력과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는 독자에게 질문을 되돌려준다. 역사는 단지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라는 점에서, 이 책은 해석의 윤리학을 실천하는 텍스트다. 그리고 그러한 실천은 독서의 윤리를 환기한다.

맬컴 엑스 &amp; 무하마드 알리
맬컴 엑스 & 무하마드 알리

5. 20세기를 보내며, 우리는 어디쯤 왔는가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에필로그는 마치 긴 여정을 마친 이가 마지막으로 내뱉는 거대한 숨결에 가깝다. 그 숨 속에는 체념도, 회한도, 남아 있는 질문도 공존한다. 유시민은 여기에 이르러, 역사를 단선적으로 낙관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기술의 발전은 분명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주었지만, 그것이 인간성의 진보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그는 인정한다.

 

핵무기, 기후 위기, 전염병과 같은 현안들은 20세기의 과거가 아니라 21세기의 현재이며, 여전히 인간은 이 위기 앞에서 무력하다. 이 책은 종말론이 아니다. 다만, 미래에 대한 성찰이 없는 현재는 자기 반복의 덫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역사는 실패의 연속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인가는 현재의 몫이다.

 

유시민은 역사를 영웅의 행진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흔들림으로 본다. 그렇기에 미래는 계획이 아니라 선택이며, 그 선택은 순간마다 갱신되어야 한다. 20세기의 그림자가 21세기의 태양을 가리고 있을 때,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빛으로 길을 찾는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빛을 등진 곳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6. 이 책은 누구에게 필요한가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특정 독자층을 한정하지 않는다. 이 책은 세계사의 사건을 암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사람보다는, 그것을 살아 있는 구조로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닿는다. 중고등학생에게는 서사의 흥미를 자극하는 입문서가 될 수 있고, 대학생에게는 사유의 프레임을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문장 구성과 리듬, 시점의 배치를 배우는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되며, 교사나 강의자에게는 입체적 서사 구조의 모델로 활용될 수 있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윤리적 해석이 강력한 반성의 기회가 되고, 문학을 사랑하는 이라면 그 서정적인 문장과 은유의 구조에 매료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필요할 사람은,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이들이다. 지금의 세계를 낯설게 보려는 사람들, 익숙한 언어로는 포착되지 않는 세계의 균열에 귀 기울이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시선을 제공한다. 유시민의 문장은 정보가 아니라 사유를 일으키는 장치다. 독자는 그 장치 속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구성하게 된다. 결국, 읽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유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여전히 진행 중인 책이며, 독자의 질문이 더해질 때 완성되는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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