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5차 재판과 전국법관대표회의, 침묵하는 권력과 사법의 위기
●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법 독립을 논의하고도 침묵 속에 끝났다.
●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내란 혐의 재판에서 끝내 말을 아끼며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 두 사안은 말하지 않는 권력 구조 속, 현재 한국 민주주의의 혼탁함을 비춘다.
침묵의 법관들 ― 회의인가 회피인가
전국법관대표회의는 표결을 끝내 하지 않았다. 법복 위에 내려앉은 침묵의 무게는 무겁고, 서슬 퍼런 독립의 기치는 창밖에 접힌 채 남았다. “사법의 독립과 공정성”이라는 문장은 이날 회의장에서 단 한 줄도 공식화되지 못한 채 흩어졌다. 발언은 있었지만 결론은 없었고, 안건은 올라왔으나 표결은 내려오지 않았다.
회의의 성격은 상징적이다. 전국 법관대표회의는 단순한 의견 교류의 장이 아닌, 사법부 내부의 합의를 대외적으로 표명하는 거의 유일한 기구다. 그곳에서 다뤄진 안건은 헌법 정신의 울림을 담아야 하고, 그들의 결의는 곧 사법의 윤리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임시회의는 정작 “결의하지 않기로 결의했다”는 아이러니만을 남긴 채 퇴장했다.
물론 이해할 여지는 있다.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민감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입장 표명이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는, 겉으로 보기엔 사려 깊은 자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법의 자제는 때로 무기력의 은어일 수 있다. 독립이란 외부 간섭에 저항할 능력이지, 외풍을 눈치 보는 연기술이 아니다.
회의는 실상 그 이전부터 균열을 품고 있었다. 회의 자체에 반대한 판사만 70명을 넘겼고, 이는 법관 사회의 분열된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부는 “정치적 함의를 우려”했고, 다른 일부는 “이 시점에서의 침묵이야말로 정치적 제스처”라고 주장했다. 이 어긋남은 단지 의견 차이가 아니라, 사법부라는 공동체의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충돌이다.
사법부는 정치 위에 서 있지도, 그 아래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법은 정치로부터 독립되어야 하지만,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때때로 독립이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에서 출발한다.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 내란의 망령과 권력의 무음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다섯 번째 재판. 그는 말이 없다. 법정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그를 둘러싼 질문들 앞에서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침묵은 전략일까, 혹은 그 자체로 메시지일까.
재판의 핵심은 단 하나다. 군을 동원해 헌정질서를 위협했는가. 법정에 선 증인 이상현 전 1공수여단장은 분명히 말했다. “문을 부숴서라도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는 단지 폭력의 기획이 아닌,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명령이다. 무기와 계엄, 침묵과 눈짓—그 모든 조각들이 하나의 우려로 조립된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은 보통 고함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조용히, 음소거된 채 사라진다.
검찰은 당시 상황을 뒷받침할 녹취록을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과 이상현 여단장 간의 통화, 그리고 그 지시를 전달받은 김형기 대대장의 진술까지. 이들 증언은 사건이 단순한 개인의 의도나 오해가 아닌, 구조적 지시 체계의 산물이었음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이 재판은 역사적 기억을 소환한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1980년 5·17 계엄 확대, 1987년의 민주화 투쟁. 한국 현대사는 ‘군과 권력’의 결탁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뼈아프게 기록해왔다. 그런 역사의 반복 가능성이 다시 재판정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의 균열을 선명히 드러낸다.
윤 전 대통령은 그 모든 질문 앞에서 말이 없다. 그 침묵은 그 자체로 권력의 초상이다. 역설적으로, 그의 무응답은 질문의 무게를 더 키운다. 마치 정지된 시계가 오히려 시간을 의식하게 만들 듯, 권력의 말없음은 국민에게 되묻게 만든다. “정말 우리가 되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말하지 않는 사법, 침묵하는 권력 ― 우리는 지금 무엇을 듣고 있는가
이 두 사안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벌어졌다. 하나는 사법연수원의 회의실에서, 다른 하나는 서울중앙지법의 법정 안에서. 그러나 둘은 같은 단어로 연결된다. “침묵.”
법관들은 회의장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도, 포토라인에서도 입을 닫았다. 그리고 이 침묵은 단지 발화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감정을 숨기는 방식이며, 책임을 미루는 장치이며, 정의를 연기시키는 기술이다.
사법부의 침묵은 자율인가, 혹은 타율의 수동적 결과인가. 권력자의 침묵은 전략인가, 혹은 심판의 무게를 피하고자 하는 잠행인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자문하게 된다. 지금 이 나라의 시스템은 발화하는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가, 아니면 말하지 않는 권력에 의해 포획되고 있는가.
사법은 말로써 존재한다. 재판은 설명이고, 판결은 해석이며, 선언은 믿음이다. 그런데 지금 사법은 말하기를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은 단지 외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내부의 균열이 더 강한 침묵을 낳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 역시, 권력의 말로서 정치의 본질을 구성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말 없이 응시한다. 그 눈빛은 지지자를 향하되, 책임을 향하지 않는다. 말의 방향이 바뀌었고, 그 말의 부재가 혼란을 낳는다.
결국, 지금 이 사회는 말하지 않는 법과, 책임지지 않는 권력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 그 표류의 물살 속에서 우리가 잃는 것은 단지 절차가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다. 정치는 갈등을 견디는 예술이며, 사법은 갈등을 정리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그 둘이 동시에 말을 멈출 때, 남는 것은 혼탁한 정적뿐이다.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우리는 묻는다.
“지금 이 시대는, 누구의 침묵으로 유지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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