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폭싹 속았수다: 3막 핵심. 엄마와 딸. 여성성과 남성성

시대作 2025. 3. 2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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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엄마와 딸, 다음의 나

 

광례, 애순, 금명의 삶으로 본 여성의 시대감각

관식이라는 위로: 남성 캐릭터의 재구성과 ‘무쇠의 부드러움’

 

<폭싹 속았수다> 3막 포스터

 

 

 

세 여자의 시간, 세 겹의 감정

<폭싹 속았수다>는 여성의 생애를 한 사람의 일대기가 아닌, 세대를 잇는 감정의 계보로 직조한다. 광례, 애순, 금명. 이 세 인물은 각각의 삶을 살아가지만, 서로의 인생을 비추는 거울이자 예감이 된다. 광례의 상처는 애순의 결심이 되고, 애순의 침묵은 금명의 질문으로 되살아난다. 그렇게 드라마는 한 여성의 역사가 또 다른 여성의 미래를 형성한다는 정서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광례는 말보다 깊은 주름으로 삶을 말한다. 시대와 가난이 빼앗은 자존을, 무뚝뚝한 말투로 감춘다. 그녀가 금명에게 내뱉은 독한 말속에는 사실상 그럼에도 네가 내 딸이었으면하는 고백이 숨어 있다. 애순은 그 무언의 사랑을 기억하며 자신은 말과 글로 마음을 풀어내는 법을 배운다. 금명은 그 둘을 관찰하고, 이어받는다. 침묵과 저항, 그리고 언어를.

 

 

부드러운 무쇠, 관식이라는 남성상

관식은 드라마가 제시하는 새로운 남성성의 상징이다. 그는 전통적 남성성의 위계와 과시에서 벗어나, 말보다 행동으로 관계를 지속시키는 인물이다. 힘은 있지만 과시하지 않고, 고집은 있으나 감정을 짓누르지 않는다. 그는 무쇠 같은 단단함 속에 따뜻한 물기를 머금은 인물이다. 젊은 관식이 애순을 바라보는 눈빛은 보호가 아니라 존중에 가깝다. 그는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으려 한다.

 

중년의 관식은 더 이상 사랑을 말하지 않지만, 모든 행동이 사랑이다. 귤을 내미는 손, 밭을 일구는 허리, 등 뒤로 내어준 자리는 그 자체로 감정의 발화다. 이 캐릭터를 통해 드라마는 '돌봄의 남성성'이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전통과 지금 사이에서 무너짐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무쇠처럼 조용하고 단단한 마음.

 

 

딸들이 읽어내는 어머니의 역사

금명은 애순의 딸이라는 정체성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녀는 여성 서사의 새로운 독자이며, 다음 페이지를 써 내려갈 작가다. 그녀는 어머니의 말을 기억하고 침묵을 의심하며, 그 틈 사이로 자신만의 언어를 마련해 간다. 그것은 분리이자 계승이다. 딸은 어머니가 못다 한 말을 찾아내며, 결국 또 다른 애순이 된다. 드라마가 금명의 시선을 통해 펼쳐 보이는 건,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만이 아니라, 그 삶을 다시 살아보려는 연대의 감각이다.

 

<폭싹 속았수다> 4막 포스터

 

여성성과 관계의 미학

<폭싹 속았수다>는 여성을 역할로 규정하지 않는다. 아내, 엄마, 며느리 같은 명칭 대신, ‘인물로 존재하게 한다. 광례와 애순이 반복해 겪는 억압은 시대의 산물이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애정은 생의 본능이다. 그들이 견디고, 나누고, 묵인한 사랑은 모두 관계의 형태로 잔존한다.

 

또한 드라마는 여성 인물의 삶을 고난으로만 서술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끝내 밥을 해먹이고, 서로를 안아주는 힘으로 묘사한다. 고통은 배경이지 전부가 아니다. 이 감정의 복합성은 그들의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엄마’라는 이름의 역사

애순은 누군가의 엄마, 그 한 명의 여자로 제한되지 않는다. 그녀는 시대의 공기, 여성이 견뎌낸 구조, 그리고 딸에게 남긴 말 없는 서사다. 금명이 애순을 회상할 때, 우리는 단지 한 인물의 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여성적 풍경을 엿보게 된다.

 

<폭싹 속았수다>는 ‘엄마라는 단어를 해체하고, 다시 짓는다. 육아, 희생, 침묵, 그리고 꿈까지. 그 모든 요소가 엄마라는 인물에 입체적으로 담겨 있다. 애순은 밥 짓는 사람만이 아니라, 시를 쓰는 이었고,, 사랑을 했던 여자였고, 복어의 독처럼 감정을 삼켰던 존재였다.

 

 

드라마는 말한다

그들도 웃고, 사랑했고, 견뎠다고. 그들이 지나온 자리에 우리가 서 있다고. 이제, 그 다음의 ''는 무엇을 선택할까. 침묵할 것인가, 기록할 것인가. 관계를 대물릴 것인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낼 것인가. <폭싹 속았수다>는 이 모든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한 세대가 폭싹 견뎌낸 감정 위에서, 또 하나의 사계절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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