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2025 칸영화제 무진출 사태, 한국 영화 진짜 위기

시대作 2025. 4. 1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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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칸영화제 무진출 사태, 한국 영화가 마주한 진짜 위기

 

📌 목차

1. 칸의 외면, 상실의 계절 속 한국 영화의 거울

2. 극장의 변신은 살아남기 위한 해체인가, 진화인가

3. K-컬처는 산업인가 문화인가

4. 젠더 감수성과 산업 구조

5. 결론: 상상력의 위기

2025년 칸영화제 무진출 사태는 한국 영화 산업이 처한 구조적 한계와 상상력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AI 영화관, K-컬처 산업화, 여성 창작자의 부상 등 다양한 변화를 통해 우리는 ‘영화 이후의 영화’를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이 글은 산업적 진단을 넘어, 한국 영화가 다시 감정과 윤리, 상상력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길을 묻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황금종려상 수상. 2019년 공식 포스터

 

 

1. 칸의 외면, 상실의 계절 속 한국 영화의 거울

2025년 칸영화제에서 한국 장편영화가 단 한 편도 초청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충격 이상의 것이다. 단지 국제무대의 소외가 아니라, 스스로가 축적해 온 자산과 내적 체계의 균열을 드러내는 징후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영화는 거의 매해 칸에 이름을 올려왔으며, 봉준호의 <기생충>은 정점에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이라는 이중의 승전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그 성공 이후, 우리 영화계는 성취 이후의 상상을 멈춘 것은 아니었는가.

 

박찬욱과 나홍진이라는 상징적 감독들의 신작도 후반 작업 미비로 출품되지 못했다. 이는 단지 운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영화는 아직도 대형 감독 중심, 대자본 시스템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새로운 흐름을 주도할 창작자층이 국제적인 대화에 참여할 통로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칸의 무응답은 그 자체로 하나의 비평이다. 국제 영화계는 여전히 낯선 목소리, 새로운 시선, 예외적인 형식에 열려 있는데, 우리는 그 세계에 들어갈 새로운 질문을 멈춘 듯 보인다. 이번 초청 실패는 연상호, 김미조, 김병우 등 비교적 세대교체 흐름을 보여주던 감독들이 외면받은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의 외부 부재는 내부 질서의 고착화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2. 극장의 변신은 살아남기 위한 해체인가, 진화인가

CGV‘Next CGV’ 프로젝트와 AI 기반 시네마 전략은 분명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실험이다. 삼성전자와의 MOU 체결, 하만의 맞춤형 음향 솔루션, AI 영화 공모전까지. 이는 영화관을 콘텐츠 상영 플랫폼에서 문화 경험의 하이브리드 공간으로 전환하려는 야심에 찬 기획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혁신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했는가이다.

 

극장이 더 이상 영화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은, 기술적 확장과 함께 감각의 해체를 동반한다. 관객은 이제 극장을 찾기 위해 특별한 이유를 요구하며, 그 요구는 점점 몰입형 이벤트에 가깝다. AI로 제작된 영화가 상영되고, 야구 리그와 콘서트가 상영관을 점령하는 이 풍경 속에서 서사의 감정은 점차 소거되고 있다. 이는 관객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라기보다는, 극장이라는 제도가 자기 정체성을 해체하며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으로도 읽힌다.

 

실제로 CGV의 국내 매출은 내림세에 놓였고, 인력 감축까지 단행되었다. 구조적 변화 없이 디지털 기술만으로 위기를 타개하려는 시도는, 결국 본질을 잃은 채 껍데기만 남길 수 있다. 관객은 공간이 아니라 의미를 찾는다. 영화관이 기술을 넘어서, 여전히 이야기의 힘을 담아낼 수 있을 때만, 진정한 진화는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진화가 아니라 해체일 뿐이다.

 

한국영화산업의 위기를 진단하다

 

3. K-컬처는 산업인가 문화인가

더불어민주당이 K-컬처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세액공제 확대 및 게임·콘텐츠 진흥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발표는 시대 흐름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K-이니셔티브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드라마·영화·웹툰·게임을 묶어 소프트파워의 중심축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콘텐츠를 산업으로만 보는 시선은 오히려 그 내면의 창작자들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

 

문제는 육성이 아닌 방향이다. 무엇을, ,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예술적·사회적 철학 없이, 단지 해외 진출과 세액공제로 요약되는 지원은 전시용 산업만을 양산하게 된다. 한국 영화는 지금까지 제도 밖의 창의성에서 가장 큰 힘을 얻어왔다. 봉준호, 박찬욱, 임상수, 홍상수이들의 시작은 정책의 수혜보다도 비주류로서의 충돌에 가까웠다.

 

‘K-콘텐츠가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창작자가 산업 안에서도 비주류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구조가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정책은 산업을 키우되, 창작자의 자유를 위축시키지 않아야 한다. ‘K-이니셔티브가 소프트파워가 되기 위해선, 예술적 모험을 감싸는 제도가 아닌, 장르의 윤리와 감각을 확장할 수 있는 실질적 토양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투자가 아니라 신뢰가 필요한 시기다.

 

4. 젠더 감수성과 산업 구조

2024년 한국 영화산업에서 여성 창작 인력의 참여율이 소폭 상승한 것은 분명한 진전이다. 김한결, 박영주, 김세휘, 이언희 감독의 중급 상업 영화들이 흥행 성과를 거두며 여성 감독의 존재감을 보여준 것은 고무적이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 비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 역시 한국 영화가 더 다양한 감정을 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벡델 테스트란?

1985년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이 만든 테스트로, 다음 3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지를 평가:

  • 작품 안에 이름 있는 여성 캐릭터가 두 명 이상 나올 것
  • 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것
  • 그 대화의 주제가 남성(혹은 연애)이 아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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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제한성이다. 주요 제작 직군에서 여성 비율은 30%를 넘지 못하고 있고, 특히 촬영감독 부문에서는 사실상 여성의 존재가 지워져 있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카메라의 시선그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보는 여성은 여전히 남성적 시선의 조각 속에서 정형화되고 있으며, 여성 캐릭터는 늘 희생하거나 희화화되거나 혹은 비현실적 초월자로 소비되고 있다.

 

OTT 오리지널 콘텐츠에서 여성 감독의 부재, 여성 주연의 축소는 새로운 플랫폼에서조차 젠더 감수성이 반영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퇴보가 아니라, 구조적 무관심이다. 한국 영화가 진정한 재도약을 꿈꾼다면, 산업의 생존뿐 아니라 서사의 다양성과 시선의 평형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결국, 누구의 이야기가 기록되고, 누구의 감정이 말해지느냐에 따라 영화의 윤리와 정체성은 전혀 달라진다.

 

5. 무너지는 것은 구조만이 아니라, 상상력

2025년 현재, 한국 영화는 산업의 균열, 관객의 이탈, 글로벌 네트워크로부터의 소외, 정치적 의제화, 젠더 감수성의 불균형이라는 다층적 위기를 통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의 본질은 시스템의 고장이나 시장의 위축이 아니다. 가장 심각한 위기는 무엇을 상상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 상실이다. 영화는 자본보다 감정이 앞서야 하며, 기술보다 질문이 먼저여야 한다.

 

우리는 지금 영화가 아닌 영화 이후의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곳에서 한국 영화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정답은 없다. 하지만 명확한 시작은 있다. 다시 질문을 던지는 것, 다시 감정과 윤리를 회복하는 것, 다시 말해지지 않은 존재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세우는 것. 그렇게 한국 영화는 다시, 자기를 상상해야 할 시간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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