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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왜 이러나. 산불은 지리산까지,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

시대作 2025. 3. 2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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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왜 이러나. 산불은 지리산까지,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

산불은 꺼지지 않았다!

 

남원시, 산불 대응 대책회의 장면. 캐리커처

 

 

1. 불길 앞에서 외면한 발걸음

산이 울고 있다. 연기 어린 능선 너머로 불길이 튀고, 잿빛 재가 봄바람에 섞여 흩날릴 때, 우리는 어디에 서 있어야 했는가. 지리산, 그 고요하고도 거룩한 등줄기 위에 누군가는 소방호스를 들었고, 누군가는 행정지침서를 펼쳤으며, 또 누군가는 비행기 시간표를 확인했다. 바람의 방향 하나에 따라 생명이 갈리는 재난의 현장에서, 어떤 이는 멈췄고 어떤 이는 떠났다. 그리고 남원시는 그 '떠나는' 쪽에 속했다.

 

바로 며칠 전인 323, 남원시는 스스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산불 국가 위기 경보 심각발령에 맞춰, 최경식 시장은 전 부서장과 읍면 동장에게 비상근무 체계 유지와 초동 진화 체계 구축을 지시했다. 주민 대피를 위한 재난안전대책본부도 마련하라고 했고, 영농폐기물 소각 자제를 요청하며 순찰을 강화하라고 했다.

 

그날의 회의실엔 책임이라는 말이 떠다녔고, 그 말들은 곧 보도자료로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 모든 경계와 지시는, 단지 카메라 앞의 성실함에 그쳤다는 듯, 나흘 만에 유럽 출장 계획으로 무너졌다.

 

 

2. '벤치마킹'이라는 오래된 변명

지리산은 지금도 타고 있다. 산불은 구곡산 능선을 넘어 천왕봉으로 향하고 있고, 그 끝에는 남원의 운봉읍과 산내면이 맞닿아 있다. 전북도는 이 지역을 비상 대응체계로 돌입시켰고, 각 지자체는 자발적으로 축제와 행사를 줄줄이 취소했다. 그러나 남원시는 29일부터 예정된 네덜란드·벨기에 출장을 여전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스마트농업 벤치마킹"이라는 말은 익숙한 방패처럼 다시 등장했다.

 

8명이 떠나는 이 일정엔 암스테르담 꽃시장과 첨단온실, 문화 체험 일정이 포함돼 있다. 축제를 줄이거나 취소한 하동, 구례, 창녕의 대응과 비교할 때, 남원시의 선택은 명백한 이탈이다. 더구나 이번 출장에는 애초 계획된 시의원들이 대형 산불로 인해 불참 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이, 사태의 중대함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시장과 스마트 농생명과 직원들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겠다라며 발걸음을 늦추지 않는다.

 

비행기 캐리커처

 

 

3. 재난에 대한 감각의 결핍

행정은 말로 작동하지 않는다. 회의실에서 결의와 현장의 응답 사이에는 늘 실행이라는 다리가 필요하다. 그 다리를 건너지 못한 행정은, 감탄이 아닌 실망과 분노를 남긴다. 지금 남원시가 보여준 모습은,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전형적인 관료주의의 이중성이다. 행정이 재난을 의제로만 다루고, 현장을 '보고서'로만 인식할 때, 결국 시민들은 뒷전이 된다.

 

산불은 단지 나무와 흙이 타는 일이 아니라, 삶의 터전과 공동체의 시간마저 삼켜버리는 재난이다. 그런데도 출장 강행이 가능했던 것은, 결국 이 재난을 남의 일로 인식하는 무감각이 그 뿌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은 단지 타이밍이 나빴다라는 말로 변명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의식의 부재이며, 공감의 결핍이다.

 

 

4. 불은 꺼지지 않았고, 책임도 마찬가지다

지리산은 단지 산이 아니다. 그것은 경계의 이름이고, 영혼의 지붕이며, 수많은 사람의 생과 죽음이 겹친 거대한 기억의 장소다. 그 지붕 위에서 불길이 춤추는 동안, 남원시는 지켜야 할 사람들보다 떠나야 할 이유부터 찾았다.

그리하여 재난을 진화하지 못한 도시가 아니라, 재난을 외면한 도시가 되었다.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책임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산은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이 더 중요했는가. 꽃시장의 향기였는가, 불타는 산의 비명이었는가.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대답을 남길 수 있을까. 불보다 무서운 것은, 그것에 익숙해지는 우리의 태도일지 모른다. 지금, 남원시는 그 무서운 익숙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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