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 싱크홀, 구조적 참사? 서울시는 왜 막지 못했나?
9호선 연장공사·지반침하 위험·예방대책 총정리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대형 싱크홀 사고는 관리 실패가 빚은 구조적 참사다. 사고 지점은 이미 2년 전 ‘지반 침하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곳이었다. 서울시는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실질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평범한 하루를 보내던 오토바이 운전자는 땅속으로 사라졌다. 이 사고는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제도가 외면한 경고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1. 무시된 경고, 반복된 위험
문제가 된 명일동 일대는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공사가 진행 중이던 곳으로, 서울시가 발주한 안전영향평가 보고서에서 ‘땅꺼짐 위험도 4등급’으로 이미 명시되어 있었다. 해당 구간은 단층 파쇄대가 존재하고, 굴착에 따른 지하수 유입으로 지반 강도가 급격히 약화할 수 있다는 위험이 지적되었지만, 감리와 시공 모두 그 경고를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다. 특히 한국터널환경학회는 2021년 공문을 통해 침하 위험을 경고했으나, 행정적 조치는 없었다. 이 사고는 ‘예측 불가능’이 아닌 ‘예견된 방치’였다.
사고 이전에도 위험 신호는 곳곳에 존재했다. 실제 공사 관계자는 해당 터널 구간에 대한 붕괴 우려를 담은 민원을 서울시에 두 차례 제출했다. 그러나 시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사고 전날 현장 작업자들이 지하수 유입을 목격하고 급히 대피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물이 스며드는 상황에서도 공사는 멈추지 않았다. 이는 ‘주의 부족’이 아닌 시스템적 무감각이라 할 수 있다.
2. 시멘트 대신 침묵, 부실 그라우팅 의혹
지반이 연약한 만큼, 공사에서는 땅을 단단히 고정하고 물의 유입을 차단하는 ‘그라우팅’이 핵심적이었다. 강관 다단 그라우팅은, 뚫은 구멍에 강관을 삽입하고 그 안에 시멘트 혼합액이나 약액을 주입해 주변 지반을 굳히는 작업이다. 그러나 현장 사진과 소방 당국의 진술에 따르면, 문제의 현장에서는 강관만 삽입된 채 시멘트 용액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그라우팅이 이뤄졌다면 강관 주위가 시멘트로 덕지덕지 덮였어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실제 사진에서는 강관만 보일 뿐, 주입된 약액의 흔적은 뚜렷하지 않았다. 이는 공사 과정에서 시멘트를 제대로 주입하지 않았거나, 주입량이 현저히 부족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아이스크림 막대에는 아이스크림이 있어야 하듯, 강관에는 시멘트가 붙어 있어야 정상이다.
서울시는 약액이 주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명확한 조사나 증거에 근거하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토사 외에 시멘트나 콘크리트는 보이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전문가와 현장 대응팀 모두 부실시공 정황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서울시는 여전히 의혹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공사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3. 지하 리스크, 안전 체계는 있었는가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상수도관 파열, 지하수 유입, 그리고 지반의 취약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콘크리트 양생 기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공사 관행도 문제가 되었다. 특히 서울시는 해당 구역을 자체적으로도 ‘위험 5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었으면서도, 정작 필수적인 GPR(지표투과레이더) 탐사는 입찰 지연 등의 이유로 시행되지 않았다. 필요한 조사는 뒷전이었고, 대응은 항상 늦었다. 결국 시간보다 느린 행정이 시민의 생명을 침몰시켰다.
사고 이후 서울시는 GPR 탐사 확대, 지하 위험지역 집중 점검 등 다양한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사고 이후의 대응’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사고 이전의 위험 경보 시스템과 사전 점검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유사 사고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의 지하 개발은 이제 구조적 개편 없이는 무의미한 반복일 수밖에 없다.
4. 서울만의 문제인가, 대한민국 전체의 경고인가
이 사고는 강동구의 국지적 문제가 아니다. 서울 전역, 더 나아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하 개발 현장은 유사한 위험을 안고 있다. 도로 아래, 터널 옆, 철도 밑 지하 공간들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체계적인 안정성 점검과 예산 확보가 시급하다. 형식적 점검이나 단기 성과 중심의 감리를 벗어나, 근본적 안전 관리 철학을 재정립해야 한다. 특히 AI와 센서를 활용한 예측 기술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서울시는 ‘지반 침하 예측 시스템’을 새롭게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스템의 효과는 실행력에 달려 있다. 현장의 정보를 누가, 언제,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할 것인가? 이게 핵심이다. 반복되는 '지시 없음'과 '조치 대기 중'은 결국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뿐이다. 기술 이전에 책임 의식이 먼저 자리 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고를 경고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 명의 죽음이 ‘통계’로 흘러가는 사회는 이미 병들었다. 안전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으로 화답하는 도시, 보고서가 책상 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도시가 돼야 한다. 강동구에서 시작된 이 경고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다음은 어디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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