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아트 바젤 홍콩: 아시아 미술, 주변에서 중심으로
한국과 글로벌 갤러리 사이, 새로운 미술의 문법
2025년 아트 바젤 홍콩은 아시아 미술이 더 이상 타자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 세계를 서사화하는 무대가 되었다. 한국 작가들과 갤러리들은 전시의 창구를 넘어, 전시 기획의 철학과 글로벌 미술 담론을 재구성하는 동반자로 자리잡고 있다. 이 글은 아시아 미술의 주체적 전환과 글로벌 시장의 전략적 수용을 교차하며, 오늘 미술의 새로운 문법을 읽어낸다.
지금, 아시아 미술은 어디쯤 와 있는가
2025년의 아트 바젤 홍콩은 미술 장터나 전시회로 제약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기억의 경계를 가진 지도이자 시계이며, 무대이자 발언대다. 수백 개의 갤러리와 수천 명의 작가가 모여 만들어 내는 이 장면은, 그 자체로 동시대 미술이 세계를 어디쯤으로 읽고 있는지, 혹은 세계가 동시대 미술을 통해 무엇을 이해하려는지를 보여준다.
이 거대한 미술 무대 한가운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미술은 이제 더 이상 ‘주변’이 아니다. 과거의 미술사가 외부의 시선으로 아시아를 기록했다면, 지금은 아시아 스스로가 자기 이야기를 자기 언어로 구성하며, 그 이야기를 세계와 나누려 한다. 이 글은 그러한 변화의 진폭을 따라가며, 아시아 미술이 어떻게 ‘자기 서사’를 짜고 있는지, 또 글로벌 갤러리들은 그 흐름을 어떻게 수용하고 전략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시아 미술의 자기 서사화: 이야기에서 전략으로
한때 아시아 미술은 세계 무대에서 ‘기이함’이나 ‘이국적인 정서’로 소비되곤 했다. 각종 전시 플랫폼이나 기획 전략에서, 아시아 미술은 '호출된 민족성' 또는 '문화적 기타'로 인식되며 주변화되었다. 하지만 이제 아시아 작가들은 타자의 시선에 갇힌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맥락, 자기 경험, 깊은 층위의 문화적 기억이 반영된 고유한 형식 언어를 통해 새로운 미술적 문법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의 주요 갤러리들이 끌고 있는 흐름은 소개 차원으로 제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단지 '한국 작가를 해외에 진출시킨다'라는 임무에 머무르지 않고, 미술을 시대와 사회를 비추는 담론적 건축물로 보고 있다. 그 시선은 회화나 설치, 미디어아트를 넘어서 정체성과 기억, 욕망과 비판이 교차하는 서사적 구성으로 확장되고 있다.
양혜규의 구조물은 공간과 언어 사이의 무게를 재조정하고, 이불의 작업은 여성의 신체와 역사를 집요하게 재해석한다. 김수자의 행위적 영상은 침묵과 움직임 사이에서 인간의 존재성을 다시 문법화하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K-갤러리는 '전시의 창구'가 아니라, '서사의 동반자'로 기능하고 있다.
아시아의 감각은 이제 민족적 부차물이 아닌, 미학의 중심에 놓인다. '한국적'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질문의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글로벌 메가 갤러리의 전략, 그리고 아시아의 자리
그렇다면 이 아시아적 서사는 글로벌 미술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을까? Hauser & Wirth, David Zwirner, Gagosian, Perrotin 등 세계 미술시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메가 갤러리들은 아시아 커뮤니티를 직접적으로 수용하며 전략적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은 단편적인 다양성 확보를 위한 장식이 아니다. 그들은 아시아 미술을 '미래의 문화 자산'으로 간주하며, 전략적 큐레이션의 중심에 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시아 작가의 작품은 단지 미적 오브제가 아닌, 글로벌 담론의 축을 재구성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탈식민주의, 젠더, 기술, 기후 등 현대의 복잡한 이슈들은 아시아 미술을 통해 재맥락화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시아는 더 이상 해석되어야 할 타자가 아닌, 해석과 편집의 주체로 재위치된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갤러리들은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감수성을 전시 기획에 녹여내고 있다. 단순히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 무대의 언어와 구조 자체를 새롭게 쓰려는 디렉터로 자리하고 있다.
아트 바젤 홍콩 1일 차 – 판매와 발견의 현장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2025년 아트 바젤 홍콩의 첫날은 강렬한 퍼포먼스와 함께 시작되었다.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는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 ‘INFINITY-NETS [ORUPX]’를 350만 달러에 판매했으며, 하우저 앤 워스(Hauser & Wirth)는 크리스티나 쿼레스의 대형 작품을 135만 달러에 거래했다. 아니카 이의 '가시'는 22만 5천 달러에, 핀아리 산피탁의 작품 두 점은 각각 35만 달러에 아시아 수집가에게 판매되었다.
떠오르는 별들도 주목받았다.. 챕터 NY는 중국 출신 작가 스텔라 종(Stella Zhong)의 조각 및 설치 작업을 모두 판매했고, 파리의 Balice Hertling은 Zhi Wei의 회화 시리즈를 전량 소진했다. 대만 작가 Jam Wu, 필리핀 출신 Pacita Abad, 중국 작가 Bingyi의 작품들도 주요 컬렉터들의 수집 목록에 포함되며, 아시아 미술의 확장성과 시장성 모두를 입증했다.
이야기와 시장 사이, 아시아 미술의 오늘
<아트 바젤 홍콩 2025>는 한국과 아시아 미술에 있어 외부 진출의 장을 넘어, 자기 언어를 실험하고, 자기 이야기를 발화하는 거대한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서 각 갤러리와 작가들은 질문을 던지고, 관람자는 그 질문의 파문을 따라간다. 아시아 미술은 이제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방황하는 감각’이 아니라, 글로벌 담론에 개입하고, 새로운 미학적 어휘를 구성하는 동시대의 기획자로 부상하고 있다. 그 중심에서 한국 미술은 정체성과 확장성, 예술성과 시장성이라는 이중의 곡선을 치열하게 타고 있다.
여운: 미술은 세계의 언어인가, 혹은 그 너머의 감각인가
아트 바젤 홍콩 2025는 결국, 미술이 언어를 뛰어넘어 감각과 맥락, 이야기와 권력의 흐름을 동시에 짊어지는 예술 행위임을 증명한다. 아시아 미술은 지금, 단순히 보이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보이도록 설계할 것인가’라는 메타적 시선을 획득하고 있으며, 한국은 그 안에서 시장의 논리와 미학의 철학 사이를 조율하는 정교한 감각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술은 언제나 세계를 묘사해 왔지만, 이제는 그 세계의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선두에, 한국과 아시아의 미술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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