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괴물 산불’ 마지막 진화. 그리고 이모저모
이번처럼 큰 산불 없게 하려면
2025년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하늘도, 땅도, 사람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삼켰다. 산불은 안동·청송·영양·영덕 등 5개 시군을 집어삼키며 서울 면적의 80%에 해당하는 4만 5천여 헥타르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현재까지 집계된 인명 피해는 사망 30명, 부상 45명, 총 75명에 달한다. 이는 한국 산불 역사상 전례 없는 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발화 원인과 수사 진행: ‘불장난’의 대가
산불의 시작은 3월 22일 오전 11시 24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야산에서 조부모 묘소 정리를 하던 A 씨의 부주의로 밝혀졌다. 그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마을 이장과 딸의 증언, 현장에서 발견된 라이터와 소주병 뚜껑, 딸의 119 신고 등이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 경찰은 A 씨를 산림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으며, 형법과 문화재보호법 적용 가능성도 검토 중이다.
그로부터 3시간 뒤, 안계면 양곡리의 과수원에서도 불이 시작됐다. 이 불은 강풍을 타고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까지 위협했다. 원인은 농사용 쓰레기 불법 소각으로 추정되며, 추가 실화자 수사가 진행 중이다. 안타깝게도 지역 주민들은 평소에도 이 일대에서 자주 소각이 이루어졌다고 증언했다.
유산의 소실, 기억의 붕괴
산불은 단지 자연을 태운 것이 아니라, 한국의 기억과 전통까지 태웠다. 보물 2건, 명승 3건, 천연기념물 3건 등 국가 지정 유산 11건과 지방 문화유산 19건이 피해를 보았으며, 12건은 전소되었다. 대표적으로, 천년 고찰 고운사가 전소되어 보물로 지정된 연수전과 가운루가 흔적 없이 사라졌고, 청송 사남고택, 안동의 지산서당과 같은 지역 문화유산도 소실됐다.
이는 2005년 양양 낙산사 화재 이후에도 국가유산 보호 시스템이 여전히 미비함을 드러낸다. 현장에는 방염포조차 지침 없이 사용됐고, 무인 진화 장비나 산불 대응시설 설치는 권고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온을 견딜 수 있는 방재 장비와 사찰과 산림 간 방화 구역 확보 등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산불 진화의 최전선: 인력과 희생
10여 일간 이어진 진화 작업엔 매일 1,000명 이상의 인력, 헬기 50대, 장비 213대가 투입됐다. 산림청은 3월 30일 오전 기준으로 산청 산불 진화율 99%를 발표했으며, 지리산국립공원 내 불씨도 진화 완료되었다. 그러나 경북 청송군에서는 재발화 조짐이 보여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진화를 위해 투입된 조종사, 감시원, 주민 등 26명이 희생되었고, 주택·공장 등 4천여 채, 농지·시설·농기계 수천 점이 불탔다. 이재민 3,773명은 여전히 대피소에 머물며, 삶의 재건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
현장 속 따뜻한 미담: 밥 한 끼의 위로
그 와중에도 사람은 사람을 위로했다. 청송 주왕산 인근의 B 식당 사장님은 진화 작업 중인 산림청 직원과 소방대원에게 집밥을 내어주며 “고생 많다”라고 일일이 감사의 말을 전했다.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던 이들에게 따뜻한 비빔밥 한 그릇은 그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 산림청 A 씨는 “다시 꼭 여행 삼아 찾고 싶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비극 속에서도 피어난 연대의 온기였다.
근본적 원인과 대책: 무관심과 관행의 폭발
이번 산불은 자연재해라기보다, 인재(人災)다. 무분별한 소각, 관리 부재, 방재 체계의 허술함, 문화재 보호에 대한 소홀함이 겹쳐 초대형 재앙을 만들었다. 강풍과 고온은 촉매였을 뿐이다. 기후 위기의 현실화와 함께, 산불은 더 이상 계절적 재난이 아니다.
이제는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불법 소각에 대한 형사처벌 강화
문화유산 방재법 제정 및 장비 기준 마련
국가 차원의 산불 대응 매뉴얼 고도화
공공 교육 및 예방 캠페인 확대
산촌 지역에 무인 감시·소화 시스템 도입
끝내야 할 것은 불, 이어가야 할 것은 기억
산불은 꺼졌지만, 탄 자국은 깊다. 불이 집어삼킨 것은 나무와 집만이 아니라 삶의 자리, 기억의 증거, 공동체의 온기였다. 우리가 이제 불을 끄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불을 불러온 시스템을 정비하고, 잃은 것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미래를 다시 설계할 수 있다면, 이 참사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더는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우리는 이 불길 속에서, 우리의 무관심이 만든 재앙을 똑똑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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