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아래, 봄비 위에: 찬란함과 쓸쓸함 사이의 계절 산책
서울, 분홍빛의 서막
해마다 이맘때쯤, 서울은 분홍빛으로 물든다. 2025년 4월 4일, 송월동 기상관측소의 왕벚나무에서 세 송이 꽃이 피어났다. 그것이 서울 벚꽃의 공식 개화 신호였다. 지난해보다 사흘 늦고, 평년보다는 나흘 이른 날. 봄은 다시금 사람들의 마음에 불쑥 찾아왔다. 그러나 늘 그렇듯, 꽃이 피었다는 소식과 거의 동시에 하늘은 묵직해졌고, 오늘 4월 5일, 서울과 중부지방 전역엔 비가 내렸다. 그 빗방울 속엔 몽골 고원과 고비사막에서 날아온 황사의 입자들이 섞여 있었다. 봄을 알리는 벚꽃과 봄을 흐리는 비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맞닿았다.
빛과 꽃의 산책로, 양재천
양재천 벚꽃길에도 조용한 서사가 깃든다. 강남구는 올해 ‘이슬에 맺힌 영롱한 빛을’이라는 주제로 섬세한 그물망과 장식물로 꾸민 빛 예술작품을 나무 위에 얹었다. 낮에는 햇빛에 반짝이고, 밤에는 별빛처럼 조명이 스민다. 밀미리교에서 영동3교까지, 약 330m 구간을 따라 흐드러진 꽃과 빛이 시민의 시선을 붙잡는다. 누군가는 그 길 위에서 사랑을 고백하고, 누군가는 혼자 걷는다. 모두가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벚꽃 아래를 지난다.
피면 내리는, 꽃비의 아이러니
그 벚꽃, 그 찰나의 빛. 그러나 매년 이 풍경은 이상할 정도로 비와 함께한다. 꽃이 피면 비가 내리고, 꽃잎은 비를 맞고 흩어진다. 수천 송이 꽃망울이 며칠 사이 만개했다가, 그보다 더 짧은 순간에 후두둑 젖고 떨어진다. 흙바닥 위에 수북이 쌓인 꽃잎은 누군가의 다정한 눈길을 받기도 전에 물들어 스러진다. 봄은 늘 찬란하고, 봄은 언제나 쓸쓸하다.
경주, 달리며 맞이하는 계절
경주의 벚꽃도 예외는 아니다. 4월 5일, 보문관광단지에서는 제32회 벚꽃마라톤대회가 열렸다. 27개국, 914명의 외국인을 포함해 1만5천여 명이 참가했다. 사람들은 벚꽃이 핀 도심과 호수를 달리며, 벚꽃이 흩날리는 속도를 따라 걷고 뛰었다. 하지만 대회에서는 치어리더나 축포는 볼 수 없었다. 전국 각지에서 번진 대형 산불 피해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꽃은 피었고, 사람들은 달렸지만, 기쁨만으로 이 계절을 채울 수는 없었다.
섬의 벚꽃, 서귀포 웃물교에서의 찬란함
제주의 웃물교에서도 제3회 벚꽃축제가 열렸다. 섬의 남쪽, 서귀포의 바람은 다른 곳보다 먼저 따뜻해졌고, 벚꽃도 일찍 터졌다. 그러나 오늘, 그 축제마저도 비에 젖었을 것이다. 웃으며 시작된 봄이 비에 젖어 우수수 젖는 모습은, 자연이 우리에게 남기는 어떤 아름답고도 안타까운 교훈 같다. 너무도 짧은 찬란함이기에, 오히려 그 찬란함이 오래도록 기억된다.
하늘의 기분, 봄의 시련
기상청은 황사와 미세먼지, 기온 하락과 강풍을 경고했다. 강원 산간에는 눈이, 중부지방에는 황사가 섞인 흙비가 내렸다. 오후 들어 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밤에는 해외에서 날아온 미세먼지의 농도가 높아질 것이란다. 그러니 우리는 꽃이 진 자리에 남은 먼지와 바람 속에서, 봄의 마무리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시 피는 봄
하지만, 그래도 봄이다. 아직 꽃은 완전히 지지 않았고, 날이 개면 다시 기온은 오르고, 벚꽃은 또 한 번 만개할 것이다. 짧게 피고 짧게 지는 운명을 알면서도, 우리는 다시 벚꽃길을 걷고, 사진을 찍고, 계절을 기억한다. 이 찰나의 아름다움을 알기에, 그것은 더 귀하고, 더 눈부시다.
눈부신 순간은 왜 이리 짧은가
벚꽃이 가장 찬란할 때, 우리는 늘 안다. 그 순간이 오래 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래서인지 봄은 언제나 조금은 슬프고,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꽃잎이 빗방울에 실려 떠나는 풍경 속에서, 우리 역시 어떤 지나간 시간들을, 혹은 잊고 싶은 감정들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계절로 들어선다.
기억에 남는 건 찬란함보다 여운
벚꽃은 잠시 머물다 간다. 마치 우리 인생의 어느 한 시절처럼. 그러나 그 찬란함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눈부신 순간은 언제나 비에 젖기 마련이고, 그래서 더욱 선명하게 마음에 남는다. 서울의 거리든, 경주의 호숫가든, 제주 바닷가든. 벚꽃 아래 서 있는 우리는 결국, 같은 시간을 걷고 있다.
[봄날을 위한 작은 안내]
- 황사 비가 내린 지역에선 외출 시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하세요.
- 비 오는 날 야외 벚꽃 나들이엔 우산과 감성을 함께 챙기시길.
- 다음 주, 벚꽃이 다시 만개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일정을 미리 잡아보세요.
- 찬란한 꽃의 생애처럼, 우리의 오늘도 작고 아름답습니다.
🌸 봄을 온몸으로 껴안되, 그 짧음에 마음 다해 바라보는 시간이 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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