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 후 조기 대선, 시민이 직면한 현실
정의의 이름으로 다시 쓰는 질문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구조를 이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과제
1. 파면은 '사건'이 아니라 '구조'의 증거
그의 파면은 개인 윤석열의 실패가 아니라, 그를 정점으로 둔 권력 연합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는 헌법을 이용해 헌법을 파괴했고, 권력기관을 동원해 권력 유지를 꾀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혼자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검찰, 정보기관, 수구 언론, 정치권력 그리고 친자본 세력은 각자의 몫을 나누듯 참여했다. 공모된 침묵과 맞춤형 보도, 야당 탄압과 반대 세력 고립은 ‘내란’이라는 단어가 허언이 아님을 입증한다. 우리는 윤석열을 끌어내렸지만, 그를 떠받치던 구조물은 단 한 개도 스스로 무너지지 않았다.
지금 우리의 질문은 윤석열 개인의 퇴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가 뿌리를 내린 정치 토양, 공적 시스템을 가장한 사적인 연대의 망을 송두리째 되묻는 것이야말로, 진짜 심판이다.
2. 광장은 웃었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도심 한복판, 빗속에서 우산을 들고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의 미소는 단지 기쁨이 아닌, 안도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승리가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파면’이라는 결정은 제도와 판결의 이름으로 내려졌지만, 그 실질은 언제든지 정치에 의해 덮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광장은 수많은 '승리 이후의 배신'을 목도해왔다. 1987년 6월항쟁의 결과가 결국 군부 세력의 연착륙으로 귀결되었듯, 이 승리도 다시 체제를 재구축할 기득권의 손에 넘어갈 위험이 있다. 그 위태로움은 광장의 환호 속에서도 곳곳에 잠복해 있었다.
시민들이 미소를 지으면서도 마음 깊숙이 갖고 있던 그 감정,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우리는 그 끝나지 않은 싸움을, 축제로 포장하지 않아야 한다.
3. 조기 대선은 ‘선거’가 아닌 ‘정치의 심판대’
정치란 기억의 투쟁이다. 조기 대선은 새로운 인물을 뽑는 절차가 아니라, 기억을 어떻게 보존하고, 어떤 구조를 청산하느냐에 관한 시험대다. 그러나 지금 대선이라는 제도는, 또다시 '망각의 기계'처럼 작동하려 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윤석열과의 단절을 선언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은 채 '대선 승리'만 외치는 모습은 사뭇 소름 끼친다. 마치 재난의 진원지를 제거한 뒤, 똑같은 재료로 다시 건물을 지으려는 듯한 몰염치다. 이는 단지 오만이 아니라, 국민을 다시 기만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런 조건에서 치러지는 대선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부패한 기억과 구조의 복원 절차일 뿐이다. 정치가 책임을 회피할수록, 시민의 기억은 더 정교하고 날카롭게 갈려야 한다.
4. 김건희 수사의 마비와 검찰의 선택적 정의
김건희는 대통령의 배우자라는 단선적인 틀에 갇힐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권력과 자본, 언론, 검찰, 문화계를 종횡으로 관통한 ‘네트워크의 총합’이자, 윤석열 정권의 실세였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소환되지 않았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의 정점에서 증거가 충분함에도, 검찰은 침묵했고 수사는 진척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무능이 아니라 의도된 유예, 정치적 계산이 낳은 방치다. 그의 이름 앞에서만 작아지는 법, 그의 증언만 기다리지 않는 수사, 그 모든 것이 한국 사법 시스템의 일그러진 초상을 비추고 있다.
또한 명태균 게이트로 불리는 사건은, 검찰과 정계, 기업의 유착이 얼마나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껏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고, 언론 역시 단발성 보도 이후 잠잠하다. 이 침묵과 비열함이야말로, 윤석열 체제의 실질적 유산이다.
5. 어디에서부터 정치를 다시 시작할 것인가
우리는 ‘대통령을 바꾸는 일’이 정치의 전부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제는 단지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그를 가능케 한 정치의 작동 방식, 선거의 논리, 시민의 무력감이다. 파면은 일종의 리셋이지만, 그것이 정치의 근본적 갱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시민의 몫은 더 커지고 있다. 감시와 행동, 조직과 연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의 지속’이다. 권력은 짧은 시간 안에 자리를 바꿀 수 있지만, 체제의 바닥에 깔린 질서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조기 대선의 조건은 뚜렷해야 한다. 반성과 책임 없는 세력의 퇴출, 검찰·언론의 독립적 감시, 권력자 가족의 수사, 제도적 재설계 없이는 선거는 다시 독으로 돌아올 것이다.
6. 정치의 정화,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
정치는 반복된다. 과거를 잊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희생을 헛되게 만든다. 윤석열은 무너졌지만, ‘윤석열주의’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것은 권력에 의해 왜곡된 정의, 언론이 축소한 진실, 침묵한 검찰, 그리고 책임을 외면한 지배 엘리트들을 통해 계속 존재한다.
정치를 정화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또다시 무너진다. 시민이 한 번 권력을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면, 그다음 해야 할 일은 그 권력이 다시 태어나지 못하도록 토양을 바꾸는 일이다. 조기 대선은, 이 나라가 정의를 소모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비로소 정의를 삶의 기반으로 삼을 것인지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우리는 이제 고통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재건해야 한다. 그래야만 권력이 저지른 잔혹이 미화되지 않고, 침묵과 외면이 체제의 기능으로 재활용되지 않으며, 정의의 이름으로 또 다른 억압이 포장되는 반복을 근본에서 차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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